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양 사태 (문단 편집) == 신양 '사태'? == 당은 신양에서 기근의 참상을 처음 맞고,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사태의 책임을 적성계급에 돌려 전국에서 권력 탈환 운동을 벌인다. 이후 당은 사태와 관련한 보고서들을 작성, 여기엔 '평양[* 안후이성 평양현. 인구 33만 5천의 1/4 사망] 사태'도 있었다. 두 지역에 대한 보고서를 모은 책자가 80년대 유포, 1989년에는 [[천안문 사태]]의 여파로 600쪽짜리 문서가 유출되기도 한다. 이것들이 이 시기를 다룬 연구 대부분의 토대로, 신양은 대기근의 대명사가 된다. 그러나 1961년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회의를 연 간부들은 사태라는 말에 지극히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다.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[* 당시 이런 일은 일상적으로 벌어졌다. 주민 대다수가 죽은 곳이 대단히 많았고 일부 촌락은 아예 사라졌다] 사태라 할 이유가 없던 것이다. 그럼에도 당이 유독 신양을 부각함은 기근의 책임을 적성계급에 돌려 책임회피를 했기 때문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